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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보고 배우다

나고 자라면서 제일 많이 하는 일은 무얼까요? 그것은 아마도 배움이 아닐까 합니다. 집에서 어른께 배우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배웁니다. 학교라는 곳은 아예 배우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 말고도 하는 게 많지만 어쨌든 학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배움입니다.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뛰어노는 게 좋았는데 돌이켜 보면 그것도 모두 배움이었습니다. 놀면서 배우는 것도 참 많습니다. 질서를 배우고, 순서를 배우고, 양보를 배웁니다.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한 사람이 참 많습니다. 배움은 중요하기도 하지만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중요하기에 거기에 쓰는 시간이 많겠지만, 즐겁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일 겁니다. 논어가 학으로 시작한다든지, 종교의 지도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배움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또한 논어에서 학을 기쁨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즐겁지 않은 일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배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한 표현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건 바로 ‘보고 배우다’라는 말입니다. 배움의 기본은 선생님이 하는 것을 보는 겁니다. 선생님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 배우는 것의 시작입니다. 서당에서 훈장님이 천자문이나 사서삼경을 읽으면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서 읽습니다. 반복해서 읽고 해석하는 것이 예전 교육의 핵심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체능은 더 그러하였을 겁니다. 선생님이 보인 시범을 학생들이 따라 하는 게 교육의 주요 방법입니다.   우리가 보고 배우는 존재는 선생님만이 아닙니다. 본다는 의미에서 부모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생님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자주 보는 사람이 바로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행동이나 말투는 무의식중에 자식에게 전해집니다. 부모가 말을 함부로 하는데 자식이 고운 말을 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행동거지가 올바르지 않은데, 자식의 몸가짐이 바른 것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부모의 걸음걸이도 따라 합니다. 부모가 뒷짐을 지고 걷는 버릇이 있으면 아이도 어느새 뒷짐을 집니다. 종종은 기울어진 어깨마저 비슷해서 깜짝 놀라고 맙니다. 아마도 부모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무의식중에 그 모습을 따라 하였기 때문일 겁니다. 스승이나 부모의 뒤를 따른다는 말도 단순한 비유 표현이 아니라 실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따라 함에도 예의가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 노릇이 어려운 것은 무의식중에도 전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자식을 탓하기에 앞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부모에게 무엇을 보고 배웠겠냐는 질책은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무엇을 가르쳐서 배운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으로 가르친 것이 아니라 내가 가만히 있어도 자식이 배운다는 점이 두려운 점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키우면서 부모도 성장하게 됩니다.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가다듬게 되는 겁니다. 부모는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몇 년째 경기민요를 배우고 있습니다. 경기민요의 높고 세밀한 음이 배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락과 감정을 좇아 가면서 조금씩 다듬어 가고 있습니다. 민요를 배우는 경우는 그야말로 보고 따라 하고, 듣고 따라 하는 겁니다. 선생님이 앞에서 노래하면 그대로 따라 하게 됩니다. 한 구절을 여러 번 반복해서 따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민요를 습득하게 되는 겁니다. 잘 보고 따라 하는 게 바로 배움인 것입니다.     최근에 민요 배우는 모습을 녹음하여 부모님께 들려드렸더니 이제 좀 들어줄 만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성장하였나 봅니다. 보고 배우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앞으로 더 성장해갈 저의 모습이 저 역시 기대가 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배우 부모 노릇 년째 경기민요 예전 교육

2023-11-12

[별별영어] 빨랫줄 위의 잔소리

 언젠가 에든버러에서 만난 웨이트리스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작은 실수를 하고선 “Every time! Not without a single mess!(늘 그래.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게 없지)”라며 자책했거든요.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해서 무의식에 새겨놨을까? 엄마일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한편 저 자신은 아이들에게 어떤 잔소리를 각인시켰을까 돌아보며 부모 노릇이 쉽지 않음을 새삼 느꼈지요.   그곳을 떠나 더블린 공항에 내리자 뜻밖의 광경과 마주했습니다. 공항의 긴 복도에 빨랫줄이 그려져 있고 거기 널린 각양각색의 티셔츠 그림 위로 부모의 잔소리가 쓰여 있는 게 아니겠어요. 하나씩 읽는데 어쩜 우리가 하는 말과 그리 비슷한지요.   깜짝 놀란 건 “I hope someday you have children just like you.(꼭 너 같은 애를 낳아 키우기 바란다)”였고 “Do you think that money grows on trees?(돈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아니)”는 “땅 파면 돈이 나온다니?”의 영어 버전 같았어요.   똑같은 것으로 “방이 꼭 돼지우리 같구나(Look at your room! It looks like a pigsty!)”와 “잘못했다고 해(Say you‘re sorry!)”도 있고, “아닌 건 아니야”는 “What part of no don’t you understand?(아니라고 했는데 뭘 이해 못 해)”로 비슷했죠.   문화가 달라 살짝 다른 잔소리도 있었어요. “If you don‘t clean your plate, you won’t get any dessert!(접시를 깨끗이 비우지 않으면 디저트는 없어)”, “Beds are not made for jumping.(침대는 점프하라고 만든 게 아니야)”처럼요.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하는 “라떼는 ~”도 약간 달랐죠. “When I was your age, I was lucky if I got a jam sandwich.(내가 네 나이 땐 잼 바른 빵 하나만 생겨도 행운이었지)”예요.   부모들에겐 보편적인 심리가 작동하나 봅니다. 보통 화가 나면 자식의 이름을 정식으로 부르잖아요? “한oo!” “김oo!”하고요. 그들도 그래요. “Justin David Clifford!” “Anita Price!” 하는 식이죠. 별명도 모자라 ‘귀요미, 이쁜이, Honey, Sweetie, Pumpkin’ 하며 다정하게 부르다가 성까지 넣어 풀 네임을 부르는 것은 거리를 둔다는 뜻이지요.   본래 잔소리란 듣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요? 부정적인 말은 참거나 눅눅한 빨래처럼 햇볕에 뽀송하게 말려서 해야겠어요. 가볍게 말해서 같이 웃고 넘길 정도로요. 말은 생각을 반영하지만 일단 하고 나면 생각에 영향을 주니까요.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별별영어 빨랫줄 잔소리 justin david 부모 노릇 더블린 공항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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